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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국 감상의 첫걸음


뉴스페이퍼 2020에 기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많은 이들에게 ‘기지국 감상’이라는 용어는 생소할 것이다. 기지국 감상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자연의 명소나 유적에 방문해 그곳의 풍경과 사물을 감상해온 것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기지국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취미 활동이다. 다년간 기지국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수많은 기지국을 탐사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지면을 빌어 짧게나마 기지국 감상이라는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기지국의 기능과 위치


본격적인 소개에 앞서 우선 ‘기지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기지국은 무선통신을 위해 전파를 주고받는 통신 설비이다. 무선통신에는 TV, 라디오, 레이더 등 다양한 종류의 전파통신 기술이 있지만, 여기서 다루는 기지국의 무선통신은 LTE, 5G와 같은 이동통신 서비스에 해당한다. 우리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하여 검색이나 동영상 시청 등을 할 수 있는 것은 기지국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쯤에서 전파, 무선통신, 5G와 같은 용어들을 보며 지레 겁을 먹는 이들을 위해 미리 일러두자면, 기지국 감상에서는 이와 같은 통신기술의 작동 원리나 공학적 지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기지국 감상은 오로지 기지국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필요로 할 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저 저기 서 있는 기둥이 전봇대인지 기지국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이다.

위태로울 정도로 가녀린 기둥에 수많은 안테나와 정체불명의 케이블, 분전함 박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기지국은 마치 사이버펑크물에서 나올 법한 그로테스크한 토템과 같은 인상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일상 공간 도처에 편재해있음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신기할 정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는 희미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만약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 어느 곳에 기지국이 위치해 있는지 알고 싶다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에서 개설한 ‘전파누리’ 사이트에서 기지국의 지역별 분포 현황 및 지도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지국 답사를 위한 사전 준비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니 꼭 참고하길 바란다.

기지국의 크기와 형태는 지역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나 주거지역의 기지국은 대개 독립적인 기둥이 없이 건물 옥상에 안테나만 촘촘히 박혀있는 아담한 형태를 띠는 반면, 고속도로나 변두리 지역 등 인적이 드문 장소일수록 규모가 크고 웅장해진다. 지역에 따른 이러한 형태의 차이는 기지국이 혐오·기피시설이기에 발생하는 것인데, 이에 관해선 글 말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2. 심미적인 기지국의 덕목


이제 우리는 기지국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기지국이란 과연 무엇일까? 기지국의 조형미는 일반적으로 ‘첨尖’, ‘밀密’, ‘괴怪’, ‘경景’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 네 가지 기준 모두에 부합할수록 이상적인 기지국에 가깝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며 이 중 하나의 요소만이라도 빼어나다면 명기지국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훌륭한 기지국이라면 모름지기 뾰족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어야 한다. 고딕 첨탑과 같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형태의 기지국일수록 아찔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며, 우리에게 어떠한 불길함과 위압감을 선사한다.

둘째로, 잎이 듬성듬성한 것보다 풍성한 나무가 더 보기 좋듯, 기지국은 안테나와 분전함을 빽빽이 달고 있을수록 좋다. 하지만 밀도 높은 기지국에서 느낄 수 있는 심상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건강한 식물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이라기보다는 따개비와 산호초로 뒤덮인 해저의 바위 표면 혹은 버섯이 빼곡히 피어난 죽은 나무 기둥이 유발하는 환공포증적인 감각에 가깝다.

셋째로, 범상치 않은 기지국은 무언가 괴이한 인상을 풍긴다. 이러한 괴이함은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있거나, 쌍둥이처럼 붙어있거나, 복잡하고 유기적인 구성을 취하는 등의 경우 나타난다. 또한 일반적인 ‘위장기지국’에서 볼 수 있는 어설픈 인공 나뭇가지와 같은 요소들 역시 자연물도, 인공물도 아닌 것 같은 언캐니함을 주어 기지국의 기괴함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야외에 존재하는 사물인 기지국은 감상에 있어 필연적으로 그것이 놓인 풍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가 흥미로울수록 그 미적 가치가 상승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관계란 하나의 기지국이 어딘가에 놓임으로써 무언가 독특하고 의미심장한 풍경이 완성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다거나 기지국 자체가 훌륭하다고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덕목은 기지국 감상의 가장 심오한 경지이기에,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다양한 감상을 통해 체득한 심미안이 요구된다. 

3. 올바른 기지국 감상의 마음가짐


기지국 감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눈앞에 서 있는 저 투박한 기둥이 마치 어떤 사악한 힘을 숨긴 듯한 음침한 매력을 얼마만큼 내뿜는지 평가하는 데 있다. 기지국의 미학이 불안과 위협의 정서에 기초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여러 소문과 그로 인해 형성된 모종의 두려움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그간 기지국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양이 인체에 무해한 정도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홍보해왔음에도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올 초 영미권에서는 SNS를 통해 코로나19가 5G 기지국으로부터 확산된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여러 지역에서 5G 기지국을 방화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기지국을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으로 연결 짓는 소문들은 물론 웃지 못할 가짜뉴스에 불과하나, 한편으로 이러한 음모론의 존재는 현대적 삶의 전반을 지배하게 된 인터넷이라는 초감각적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공포와 절망감이 기지국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투사된 것임을 말해준다. 기지국의 존재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전능한 인터넷을 매개하는 사도처럼 우두커니 모두를 내려다보는 꺼림칙한 무언가로 우리의 마음속에 엄습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정신분석학적 차원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기지국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인데, 그 실질적인 위협은 질병이 아닌 추적과 감시에 있다. 만약 누군가의 모바일기기가 LTE, 5G와 같은 무선통신 서비스에 가입되어있다면, 서비스가 제공되는 범위 내에서는 그의 위치정보, 즉 누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기지국을 통해 기록되며, 이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2011년 희망버스, 2013년 철도파업 당시 수사기관에 의해 노조 활동가 및 언론사 기자를 대상으로 위치추적 및 감청이 이루어진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기지국 수사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내용 역시 기존의 위헌적 수사관행을 근본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어디서든 감시와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지국은 『반지의 제왕』의 바랏두르 탑 위에 번뜩이는 사우론의 눈처럼 모두를 지켜보고 있다.

기지국 감상은 적어도 감상이 이루어지는 순간만큼은 이러한 관계를 역전시켜 우리를 보여지는 대상이 아닌 보는 주체로 만든다. 또한 이를 계기로 우리는 인터넷을 작동시키기 위한 하드웨어로서의 기지국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북극의 데이터센터와 태평양에 매설된 해저케이블 등으로부터 연결되고 이어지는 인터넷의 육체에 대한 총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렇게 시각 행위의 과정에서 뒤바뀐 주체와 객체의 자리를 되돌려놓고, 스크린 너머에서 화면 속의 세계를 떠받치는 지지체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건강하고 올바른 기지국 감상의 정신일 것이다.

NEWSPAPER, ISSUE NO.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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