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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경론 기획노트

축경론 도록에 수록, 2020

인물상을 중심으로 전개된 조각의 역사에서 ‘풍경’은 흔히 다루어져 온 소재는 아니다. 조각은 부조를 통해 풍경을 기록하거나 기념비의 형태로 풍경의 일부가 될 수는 있었어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풍경으로 제시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전시는 조각을 통해 풍경을 다루기 위한 방법으로 ‘축경(縮景, miniascape)’이라는 개념을 경유한다. 수석(壽石), 분재(盆栽), 석가산(石假山) 등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축경’은 자연의 풍경을 축소하는 기예를 의미한다. 먼 옛날부터 동아시아의 문화권에서 발달해온 축경 문화는 광대한 자연의 경치를 작은 뜰이나 방 안에서 감상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미적인 욕망으로부터 형성되었다.

축경에서 풍경을 축소하는 방식은 디오라마(diorama)처럼 실재하는 특정 풍경을 고스란히 작은 크기로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축경이 보여주는 풍경은 퇴적,침식과 풍화 및 특정한 기후, 지리적 조건에서의 생장 등 물질 작용이 빚어낸 사물 속에서 발견된다. 의식적으로 재현을 의도한 주체가 없음에도 조그만 돌덩어리 하나가 산수(山水)와 같은 풍경을 닮을 수 있는 이유는 특정 자연물-부분의 형태를 결정짓는 원리가 그것이 속한 풍경-전체의 형태를 만드는 원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축경론》에서 수평적이고 가시적인 성질의 풍경은 수직적이고 물질적인 조각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은 에폭시, 폴리스티렌 등 재료의 물성 및 캐스팅, 모델링과 같은 전통적인 기법을 변주하고 왜곡하며 이루어진다. 뒤엉키며 녹아내리고, 과열되어 깨지거나 부풀어 오르고, 산만하게 바스러지고 어긋난 사물 하나하나는 전시를 통해 저마다가 하나의 축소된 풍경이자 동시에 거대한 풍경의 파편으로 제시된다.

광활한 공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축경의 기능은 ‘지도’와 유사하다. 풍경이 감상자를 둘러싸는 것이 아닌, 감상자가 전지적 시점에서 풍경을 둘러보며 관찰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축경은 둘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축경을 통해 우리는 풍경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일면적인 풍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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